道 可道 非 常道
名 可名 非 常名
도라 할 수 있는 도는 변하지 않는 도가 아니며, 이름이라 할 수 있는 이름은 변하지 않는 이름이 아니다.
인간이 보는 세상은 본질적으로 불완전하다. 인간이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우주에서 봤을때 자그만한 먼지보다도 작은 인간의 능력으로 온전한 진리를 담아서 표현 할 수 없다.
그렇기에 진리에 대한 규정은 항상 변한다. 사실 그 본체는 변하지 않지만 변하는 세상에 맞춰서 변하기에 진리인 것이다.
이는 고대 그리스 철학의 만물유전과 통한다. 또 불교의 제행무상과 통하는 진리이다. 아니 그저 세상이 인간에게 스스로를 그렇게 내보이기에 현상계의 모든 현상은 결국 변한다. 그리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無 名 天地之始
有 名 萬物之母
무 명은 천하의 시작이요, 유 명은 만물의 어머니이다.
본래 세상에는 정해진 것이 없다. 본래 모든게 무에서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없으니 해야될 것도 하지 않아야 할 것도 그것을 한다는 것도 안한다는 것도 존재도 비존재도 그저 없을뿐이다. 세상의 본질은 그러하다. 없음에서 시작했기에 아무것도 없다.
그런 무에서 유가 나와서 원리와 법칙이 생기니 그것이 만물의 시작이고. 만물의 어머니이다. 본래 없음에서 시작하였으니 자연히 당연한 것은 무엇도 없다. 그러나 있음으로 인해서 모든게 생겨나고 그에 따라 변화하며 그에 따라 살아간다. 만물이 유로 인해 생겨나서 생장하고 소멸하며 변화하니 그에 그에 따라 각자의 명이 된다.
故
常 無 欲 以觀其妙
常 有 欲 以觀其徼
그러하니 상시, 무욕하여 그 기묘함을 관 할 수 있고 상시, 유욕하여 그 기오함을 관 할 수 있다.
상시 무에 있으므로 이 세상의 기묘함을 볼 수있다. 본디 정해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어찌하여 무엇인가 흐르며 현상이 일어나고 질서가 존재하는가? 그 원인이란 없다. 모든 것은 자연히 변하며 그에 알맞게 명을 가진다. 그러나 정작 그자체에는 그런 것이 없다. 애초에 그런 것은 원래 없기 때문이다. 반드시 그래야 할 것이 없지만 무언가의 작용으로 그것은 그저 자연히 그러할 뿐이다. 그러니 묘하다.
상시 유에 있으므로 이 세상의 질서와 현상을 볼 수 있다. 모든 것이 자연히 그러한 법칙에 따라서 한치도 어긋남없이 변화한다. 나 자신 조차 거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것이 어째서 그러한 원리로 흐르는지는 알 수 없지만 명백히 거기서 벗어나지 않으니 참으로 기오하다.
此兩者 同出 而異名 同謂 之玄
이두가지는 같은 곳에서 나왔으나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그러므로 같이 현이라 부른다.
무가 없으면 유가 존재할 수 없고 유가 없으면 무가 존재할 수 없다. 유의 다른면은 무이며 무의 다른면은 유이다. 아무것도 없기에 그에서 무엇인가가 있을 수 있다. 무언가가 있기에 그에서 없음이 있을 수 있다. 법칙이 없기에 법칙을 세울 수 있고 도덕이 없기에 도덕을 세울 수 있다. 생명이 없기에 그에 반대되는 생명이 존재한다.
필요에 의해서 구분하지만 사실 그 둘은 같은것의 작용이다. 인간 입장에서는 그저 현묘할뿐이다.
玄之又玄 衆妙之門
현하고 또 현하니 그것이 모든 묘함의 문이다.
현(무)이 또 현(유)하다. 그 무엇도 현현에서 벗어나지 못하니
현현은 모든것의 문이다.
어째서 과학과 불교 또는 철학 그리고 신학의 결론들이 비슷한 길로 가고 있는가? 그것은 그저 세상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사이비처럼 자기 망상을 펼치는게 아니라면 결국 모든건 그저 세상의 현상과 원리를 설명하기 위한 시도들이며 그러니 자연히
이 세상의 법칙과 인간의 인지를 벗어날 수 가 없다. 개개인의 부족함에 의해서 닿을 수 없는게 존재한들 그것들은 결국 현에 의한 작용이니 이에 어긋남이 존재 할 수 있을리가 없지않나.
성경의 요한복음 14:6 에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라는 구절이 나온다.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4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5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이 또한 이 구절과 같은 의미이다. 물론 기독교 입장에서는 현실의 이유로 이를 기독교를 믿지 않으면 안된다는 해석으로 받아들이지만 모든 것은 결국 현에 의함이니 현에서 벗어 날 수 없다. 이는 보통 각자의 물리법칙이 존재하지 않는거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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