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尙賢 使民不爭,
不貴難得之貨 使民不爲盜,
不見可欲 使民心不亂
현명함을 높이지 않아 현명함을 다투지 않는다, 얻기 어려운 재화를 귀히 여기지 않아 귀한 것을 도적질 하려하지 않는다.
욕망을 일으킬만한걸 보지 않아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는다.
불완전한 세상에 속한 글귀로 도라는 것과 명이라는 것을 규정하려는 시도는 본질적으로 불가능한 것에 가깝다. 완전히 틀린 것이 아니라면 해석한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고 그 해석조차 완전하지 않음이라. 그것이 비상도 비상명이니까 보통 3장의 경우 치세에 대한 통치 철학으로 주해 한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아마도 고대철학이 그 자체가 지배자와 귀족의 학문이라 자기 아랫사람들을 어떻게 다스리는지가 향유하는 사람들의 주된 관심사중 하나였기 때문일거다. 보는 사람에 따라 같은 것도 조금씩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된다. 그것이 이데아의 그림자의 특징이다. 사실 경전 자체가 후대에 첨삭된 구절들도 많을 것이나 그저 그 진리가 망가지지 않고 통하면 족하다. 어차피 이것은 그저 손가락일뿐이니
민의 경우 국민이나 시민 등 사람을 지칭하는 한자이기도 하나 그 사람에 자신이라는 의미도 있다. 그렇기에 이건 단순히 국민을 다스리는 방법이 아니라 자신을 다스리는 내용이기도하다. 같은 동양 철학의 유가에서 말하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맥락과 또 다른 내용들과도 일맥상통하는데 결국 수신( 修身 )이 모든 것의 본이다. 통치철학으로의 주해는 이미 많으나 요즘 들어서 이 본질을 짚는 사람들이 드물다.
현명함(명예)을 높이지 않으니 다른 사람과 내가 현명하다 다투려 들지 않고, 인간이 정한 귀한 것을 귀히 여기지 않으니 그것을 빼앗으려 마음을 쓰지 아니한다. 나에게 불필요한 욕심이 생길만한 것을 굳이 가까이하지 아니하니 마음이 어지럽지 않고 평안하다. 모든 것은 본래 무하니 인위적으로 유한 것들의 탐하지 아니한다. 이렇게 도덕경 전체를 관통하는 진리는 늘 한결같다. 사실 어지간한 진리들도 다 비슷한 편이다. 세상이 그렇기 때문이다. 그저 일이관지. 그렇기에 진리이다.
是以 聖人之治
虛其心 實其腹
弱其志 強其骨
성인의 다스림이란 이와 같으니 마음을 비워 배를 채운다. 뜻을 약하게하여 그 뼈를 강하게한다.
도덕경 자체만 두고 보면 사실 유와 무를 논하는게 이해가 어려울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사실 그냥 도덕경을 처음 접했을때 부터 이해하기 쉬웠지만 이것이 정상의 범주는 아니다보니 이것을 일반화하긴 어려워보인다. 유와 무를 논하는 것을 좀더 상세하게 고찰해보고자 한다면 서양의 근대와 현대 철학들을 살펴보는게 좋다. 샤를,하이데거,데리다 등 그것도 해석의 이슈가 조금 있긴하지만 그래도 그를 이해한다면 도덕경에서 말하는 무와 유라는게 대략적으로 이해가 될 것이다.특히 데리다의 해체주의의 경우 도덕경에서 말하는 유무의 개념에 대해서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줄거라 생각한다.
성인의 다스림이란 마음을 허하게하고 뜻을 약하게하며, 그에 대비되게 배를채우고 골수를 강하게한다는 것이다. 앞구절과 연결되어서 그뜻은 간단한데. 본질적이지 않은 것들을 다투지 말고 참된 진리와 실익에 집중하라는 의미이다. 물론 이게 명분을 다 가져다버리고 얼굴을 두껍게하라는 의미이진 않다. 그저 쓸모도 없는 현명함을 다투기보다는 진짜 현명함 같은것을 구하라는 의미이다.
성경에도 비슷한 독려가 있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요한복음 6:27)
常使民 無知無欲, 使夫知者 不敢爲也
항상 무지하고 무욕하여, 안다 하는 자가 감히 하지 못하게한다.
도덕경에서 말하는 무지와 무욕은 우민를 말하는 개념이라기보다는 본질적인 뭔가를 추구하는 것에 가깝다. 그것을 인간은 모른다는 것을 알고 본질적인 것을 보니 무지이고 헛된 것이 아닌 것을 추구하니 무욕이다. 무지무욕하니 진정 지혜로운게 아닌 그저 자신이 안다고 여기는 어설픈 무엇인가로 중요하지도 않는 것을 하지 않게한다. 그것은 참된 앎이 아닌 썩을 양식이고 인위이다.
爲無爲 則無不治
이것이 무위로 위함이니 다스림이 없다.
무위란 아무것도 하지 않음도 무엇인가 하지 않음을 의미하는게 아닌 인위적이지 않음 헛된 것이 아닌 참된 본질적인 것을 행하는 것을 말한다. 인위를 하지 않기에 자연히 본질적인 것을 무위하게된다. 그것이 자연이라. 세상이 그저 그럴뿐이다.
그러니 다스리는 것도 다스려지는 것도 다스려지지 않는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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